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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신 유래 신화, 형상과 역사, 의례 방법

by 빛의 라 2024. 8. 30.

과거를 배경으로 한 고전 드라마를 보면, 항상 어머니나 할머니가 뒤뜰 장독대의 항아리 위에 물이 가득한 그릇을 놓고 손을 비비면서 기도하는 모습이 나온다. 한국민속 신앙에는 가정을 지키는 신이 여럿인데 그 중 하나인 '칠성신(북두칠성 신앙)'께 기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곱이나 되는 신이라 관장하는 영역이 다양하니, 가신 중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신이라 할 수 있다. '칠성신 신앙'에 대해 알아본다.

 

 

칠성신 유래 신화

칠성신은 북두칠성을 신격으로 모시는 것을 말한다. 별의 이름, 즉 신의 이름은 각각 천추, 천선, 천기, 천권, 옥형, 개양, 요광이다. 도교에서는 '칠원성군'으로, 불교에서는 '칠여래'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4방위 중 북두칠성을 최고로 모신다.

 

옛날, 어느 과부에게 일곱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일곱 형제는 어머니가 밤만 되면 어디론가 나가는 것을 눈치채게 된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형제들은 어머니 뒤를 따라갔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밤마다 차디찬 개울물을 건너 이웃마을 남자를 찾아가는 것이 아닌가. 일곱 형제는 이에 아무 말 없이 다음 날 개울에 징검다리를 놓아 어머니가  발이 시리지 않도록 하였다. 어머니는 이를 모른 채 이런 고마운 일을 한 이들이 나중에 하늘의 별이 되게 해 달라고 빌었다. 그리하여 형제는 북두칠성이 되었다. 넷째는 징검다리를 놓을 때 투덜거렸기 때문에 다른 별에 비해 흐릿하게 보인다. 

 

 

형상과 역사

형상

신의 형상에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 7세 아이의 운명을 맡는 일곱 쌍둥이 신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남녀 성별로 나뉘어 세 명의 남성과 네 명의 여성이라는 설도 있다. 조선 시대, 중국 도교식으로 제사를 지냈던 관청 '소격서'에는 그들이 모두 여성이라는 기록이 보인다. 이는 중국 도교에서 북두칠성을 '두모( 북두칠성의 어머니)'라고 부르며 여신으로 인식하는 관념이 넘어온 것이다. 제주도에서는 특이하게 뱀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뱀에 의한 흉한 일이 일어났을 때, 이를 회복하기 위해 칠성신에게 기도했다.

 

현대에는 관복과 관모를 쓴 남성으로 묘사되고 때로는 고깔을 쓴 승려나 부처로도 묘사된다. 부처나 승려로 묘사될 때는 '칠성여래'라고도 하는데 이는 인도 불교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도에서 그대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중국을 거쳐 들어오면서 도교의 칠성성군 그리고 한국의 기존 칠성신 신앙이 섞이게 된다.

신이 일곱이기 때문에 각 분야마다 다양한 영역을 관장한다. 수명, 재산, 임신, 시험 통과 등 사람의 소원이라 할 수 있는 것의 대부분이  칠성신에게 달려있기 때문에 칠성신의 신격은 높을 수밖에 없었다.

 

역사

한국에서 칠성신을 섬긴 역사는 상당히 길다. 확인된 유물을 추정하면 이미 청동기 시대 고인돌이나 선돌에서부터 북두칠성을 묘사한 암각화가 발견되었다. 최소 고조선 시대부터 칠성신앙이 있었다는 뜻이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고분벽화, 백제의 묘견보살(북쪽의 별 신앙) 신앙, 신라의 대일여래신앙이 있었다. 고려 시대 문헌인 <삼국유사> 권 1 '기이 김유신조'에 김유신의 탄생을 "칠요(일곱 빛)의 정기를 타고났으므로 등에 칠성의 무늬가 있고, 또 신이한 일이 많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고려시대에는 치성광여래를 중심으로 한 여러 별을 신격화해 섬기는 구요당이 있었다. 이것이 조선시대에 북두칠성 신앙으로 두드러진 것이다. 지금도 절마다 칠성신을 모시는 칠성각이 있다.

 

 

의례 방법

칠성신 의례의 주체는 그 집안의 할머니, 어머니인 여성이다. 칠성을 모시는 곳은 뒤뜰 장독대인 경우가 많다. 제사는 칠월 칠석(음력 7월 7일) 밤에 지낸다. 돗자리를 깔고 제단 위에 백설기를 담은 떡시루와 정화수 한 그릇을 놓는다. 가끔 사발(넓고 움푹한 그릇)에 쌀을 넣기도 한다. 촛불을 밝힌 후, 여성은 동서남북을 향해 네 번 또는 일곱 번씩 절을 하고 나서 북두칠성을 바라보며 축원한다. 그리고 식구 수대로 소지장을 올린다. 

경북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에서는 뒷마당 장독대 옆의 큰 돌에 물을 담은 사발을 놓고 이를 칠성이라고 한다. 여성들이 매일 정화수를 떠다 갈아 넣어야 한다. 이때 남이 준 물이나 우물에서 남이 퍼 준 물도 쓰면 안 된다. 본인이 직접 해야 한다.

전라남도 고흥군 나로도의 무녀 박신녀는 장독대에 높이 75cm의 대나무를 세우고 윗부분을 부챗살처럼 쪼개어 펴서 그 위에 뚜껑을 덮은 그릇을 얹어 놓고 묶어 놓았다. 이를 칠성이라고 한다. 매월 7일, 17일, 27일 아침에 주부가 목욕재계하고 정화수를 길어다 부으며, 자손들을 위해 북두칠성님께 기도한다.

 

 

1970년~1980년대에도 나의 할머니는 정화수를 떠 놓으시고 기도하셨다. 가장 많은 영역을 관장하는 칠성신의 위력은 구석기시대부터 20세기까지 이어져왔음을 볼 수 있다. 매일 새벽마다 그릇에 깨끗한 물로 채운 후, 맑은 정신으로 기원했으니, 칠성신이 그 정성에 감복하여 소원을 들어줄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불교도입 이후에도 한국 민속 신앙은 사라지지 않았고, 불교 사찰가운데 한 구역을 오늘날까지 차지하고 있다. 한국의 사찰에는 어디든 '칠성각'이 있다.